참회록(懺悔錄)
- 대재 성주
- 2023년 11월 3일
- 2분 분량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존재한다.
종교란 누군가의 사상과 어떤이의 믿음이 하나둘씩 더해져 생긴 일종의 울타리이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란
진리란 이름의 산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 같은 것이다.
등산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산에 오르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동.서.남.북 어디서 시작하던 오르기만 한다면 한곳에서 다 만나게 된다.
바로 정상이다.
근데 자주 등산을 하다 보면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목표는 같은데 등산로 때문에 싸우게 된다.
이 길이 더 가깝다느니
저 길이 더 편하다느니
그러다 편이 갈리면 다투고 각자의 길로 다니게 된다.
올해 2023년 계묘년은 불기(佛紀) 2567년 이다.
불기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부터
경과된 횟수를 말한다.
2567년.
참으로 오랜 시간이다.
이 오랜 시간동안 부처님의 법은 여여하게 존재 했었고 앞으로도 세세 생생토록 전해질것이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지 1700여년.
한국 불교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대장부의 길로 나아가는 출가자와 젊은 불자들은 줄어들어 스님과 신도수는 감소하고 있으며 평생을 불자로 살아오신 분들조차도 말년에는 타종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사찰 재정 자립도는 악화되어 절이 부동산 매물로 넘처나는 지경이다.
또한 불교미래 사회연구소(소장 퇴휴)에 의하면
지금부터 3-40년 후에는 천주교가 국내 최대 종교단체가 될것이며 불교는 종교적인 역할보다는 전통문화 시현과 명상수련의 장으로써 문화재의 일환으로만 명맥이 유지 될거란 보고서도 있다.
불교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때는 이 땅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불교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 모든게 나를 비롯한 스님들 탓이다.
세상을 등한시한 스님.
시대를 등한시한 스님.
기득권에 만족하는 스님.
눈이 있어도 못본척 하는 스님.
입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스님.
마음이 있어도 행동하지 않는 스님.
생각이 있어도 실천하지 않는 스님.
내가 누리는 지위에 안주하는 스님.
이외에도 그냥 직업이 스님이신 모든 스님들 탓이다.
만약 부처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볼때
절간에만 들어앉아 참선하고 염불하는
우리를 보고 잘하고 있다 칭찬 하실까?
중생은 아프다는데 그 아픔을 외면한
우리를 보고 염화 미소를 지어 주실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교가 천주교/기독교보다 뒤처진 이유.
스님이 신부나 목사보다 더 대우받지 못하는 이유.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아서다.
중생들과 함께하지 않아서다.
사람이 중생이 모두가 부처인데
스님이 부처님을 모른척 한 탓이다.
나는 도사가 아닌데 도사인척 했고 고승이 아닌데 고승인척 하며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아프고 기댈곳이 없는 저 부처님들을 외면하고 무시한 과보가 이렇게 돌아오는 것이다.
목사나 신부들이 빈민가에서 무료급식하고 의료봉사하고 고아원/양로원 봉사활동하고 교육에 힘쓸때
우리 스님들은 무얼 했는가?
내 절을 잘 꾸미기 위해 내 절을 더 크게 짓기위해
돈있는 보살은 대우하고 가난한 보살은 무시했으며
오로지 내 절만 중요해서 시주받고 불사받기에만 급급했던 잘못된 영업이 내 발등을 찍은 것이다.
변치않을것 같던 영원히 내 절에만 다닐것 같던 내 팬들이 변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훈아/남진의 팬이 조용필에게 옮겨가듯이.
팬덤이 변한 것이다.
내가 스님으로써 이 아픈시대를 위해 뭘했는가?
입으로는 자비를 말하면서 나 스스로는 가장 낮은자들로 부터 군림 하지는 않았는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우 받을려고 하지 말고 나누려고 애써야 한다.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
시키려고 하지 말고 내가 먼저 솔선수범 해야한다.
시대는 초단위로 빠르게 변하는데 언제까지
과거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부처님의 말씀이 진리인것은 변함이 없지만
이 시대가 그 시대가 아닌것을.
이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닌것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변해야 한다.
성직자로써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스님이 변해야만 불자가 변하고 불교가 변한다.